외국인이 놀란 한국의 ‘회식 문화’ – 건배, 소주, 그리고 눈치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처음 경험한 외국인들이 낯설게 느끼는 문화 중 하나는 단연 회식이다. 단순히 식사 자리가 아닌, 조직 내 유대감을 강화하고 위계질서를 암묵적으로 확인하는 사회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외국인에게는 하나의 의례처럼 다가온다. 특히 한국에서는 회식이 업무의 연장선처럼 여겨져 참석 자체가 ‘선택’보다는 ‘참여해야 하는 분위기’로 받아들여진다. 외국인 직원이 처음 회식에 참석했을 때 겪는 혼란은 단순히 언어 장벽 때문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상사의 잔을 먼저 채워야 한다거나, 술을 마실 때는 고개를 돌려야 한다는 세세한 예절은 사전에 알지 못하면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 처음엔 이런 규칙들이 다소 형식적이고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외국인들은 점차 그 안에 담긴 ‘존중’과 ‘배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회식 자리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는 ‘눈치’다. 한국 사회에서 눈치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의 위치를 파악하고 관계를 조율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상사가 자리를 뜨지 않았는데 먼저 일어나는 것, 건배할 때 건성으로 잔을 드는 것, 누군가의 잔이 비었는데 먼저 채우지 않는 것 등은 회식의 분위기를 깰 수 있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외국인들은 이런 행동이 왜 문제인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식사 자리가 훨씬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모든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이자 조직 내 질서의 표현이다. 심지어 말없이 따르는 한 잔의 술이 업무 중 쌓인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외국인은 이처럼 말보다는 행동으로 드러나는 한국식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적응하면서 회식 문화를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음주 문화 또한 외국인을 놀라게 하는 부분이다. 한국의 회식에서는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마시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작용한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술잔을 두 손으로 받는 예절, 잔을 들고 고개를 돌려 마시는 행동 등은 모두 한국식 예의의 일부다. 특히 건배사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팀의 분위기를 바꾸고, 웃음을 유도하며, 때로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외국인 입장에서 이런 문화는 다소 피곤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조직과 개인이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로 작용한다. “회식 이후로 팀장과 훨씬 가까워졌다”는 외국인 직원의 말처럼, 회식은 단순히 술자리를 넘어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사적인 관계를 통해 업무적인 신뢰가 생기는 구조이기 때문에, 회식이 중요한 연결고리로 여겨지는 것이다.

최근 들어 회식 문화는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MZ세대는 ‘자율적인 회식’을 선호하며, 외국인과 함께 일하는 기업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 회식 방식으로 전환 중이다. 낮 시간대 식사 회식이나, 술 없는 워크숍 형태의 모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는 전통적인 회식 관행이 유지되고 있으며, 외국인은 이 흐름 속에서 ‘참여’와 ‘적응’이라는 과제를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피로감을 느낄 수 있지만, 동시에 한국인의 정서와 조직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회식은 한국인의 관계 방식, 위계질서, 배려 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외국인이 이 자리를 단순한 음주 시간으로 보지 않고 문화적 소통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한국 사회에서 더 원활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회식 문화의 중심에는 ‘정(情)’이라는 한국 특유의 정서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회식이 직장에서 벗어난 자유 시간에 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한국인에게 회식은 단순한 회포 풀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를 나누는 시간이다.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상사의 농담에 웃으며 맞장구를 치고, 동료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과정에서 한국식 유대가 형성된다. 외국인들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 정서적 교류를 이해하게 되며, 오히려 본국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따뜻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회식은 단순한 음주 문화가 아니라, 조직이 ‘사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점에서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며, 언어로는 전달되지 않는 정서적 소통이 일어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