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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음악은 대개 K-팝이다. 화려한 무대, 세련된 안무, 그리고 세계적인 팬덤은 한국 현대 문화의 대표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도시의 화려함을 벗어나면, 외국인들은 전혀 다른 음악의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바로 한국의 전통 악기다. 가야금, 해금, 장구, 태평소와 같은 악기들은 현대 음악에서는 들을 수 없는 고유한 울림과 감정을 품고 있다. 그 소리는 단순한 음의 나열이 아니라, 한국인의 역사와 삶, 그리고 세대를 거쳐 내려온 정서를 담은 ‘문화의 목소리’다.

외국인이 배우는 한국의 이색 악기 이야기

처음 이 악기들을 접한 외국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생소하지만 매혹적이라는 것. 프랑스 출신의 소피는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한국에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한 전통 공연장에서 해금을 처음 봤다. 두 줄밖에 되지 않는 현에서 쏟아져 나오는 깊고 애절한 소리에 놀란 그는 곧바로 수업을 신청했다. 그러나 직접 활을 잡아보니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왼손은 줄을 미묘하게 눌러 음정을 만들고, 오른손은 활을 섬세하게 움직여야 했다. 사소한 손가락 움직임 하나가 곡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소피는 “해금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연주자의 감정을 실어 이야기하는 목소리”라고 표현했다.

호주에서 온 마이클은 가야금에 마음을 빼앗겼다. 길고 평평한 몸체, 줄을 뜯어 울림을 만드는 방식은 겉보기엔 기타나 하프와 비슷했지만, 소리의 깊이는 전혀 달랐다. 그는 가야금을 배우며 서양 음악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여백의 미’를 발견했다. 한 음 한 음이 그림의 붓질처럼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며, 그사이에 흐르는 침묵마저 음악의 일부가 되었다. 마이클은 “가야금은 연주자에게 인내와 몰입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미국 출신 리가는 장구 수업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서양 드럼이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면, 장구는 장단 속에서 박자가 늘어났다 줄어드는 유연함을 지닌다. 처음에는 ‘박자가 틀린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장구의 매력임을 알게 됐다. 그는 “장구를 배우면서 한국어의 억양과 리듬이 왜 그렇게 독특한지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장단은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춤과 노래, 그리고 이야기가 결합한 한국 문화의 핵심이었다.

이렇듯 전통 악기를 배우는 과정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다. 외국인들은 악기를 배우면서 그 악기의 역사, 제작 과정, 관련 전통 공연까지 함께 접한다. 가야금과 해금은 각각 다른 나무와 가죽, 금속 부품으로 제작되며, 지역에 따라 소리의 성질이 미묘하게 다르다. 장구는 가죽의 두께와 장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색을 내고, 태평소는 리드 제작 방식에 따라 성격이 확 달라진다. 이런 디테일은 외국인들에게 “악기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장인의 손길과 세월이 깃든 예술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영국 출신 앨리스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해금 수업에 참여했는데, 처음 활을 잡았을 때 무릎 위에서 연주하는 방식이 낯설었다. 그러나 몇 번의 수업 후, 해금 특유의 곡선 같은 선율에 빠져들었다. 앨리스는 6개월 동안 배운 끝에 작은 공연에서 ‘아리랑’을 연주했고, 청중 중 몇몇은 눈물을 훔쳤다. 그는 “바이올린이 직선적으로 감정을 전한다면, 해금은 부드럽게 감싸며 마음을 울린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온 벤저민은 교환학생 시절 장구 수업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드럼처럼 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장단을 이해하고 몸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한배’라고 불리는 박자의 늘어남과 줄어듦은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는 귀국 후에도 한인회 행사에서 장구를 연주하며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 출신 에밀리는 전주 한옥마을에서 태평소를 처음 들었다. 귀를 찌를 듯 강렬하면서도 흥을 돋우는 소리에 매료된 그는 즉석에서 체험 수업에 참여했다. 작은 대나무 조각과 갈대 줄기로 만드는 리드의 섬세한 제작 과정을 보며, 그는 “악기 하나에도 장인의 철학과 시간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 한 달간 배운 뒤, 지역 농악 공연에 서며 그는 그 여름을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이라 표현했다.

호주 출신 사라는 가야금을 배우기 위해 1년간 한국에 머물렀다. 처음 몇 달간 손끝이 갈라지고 굳은살이 생기는 고통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줄 위의 미묘한 진동이 감정의 파도처럼 느껴졌다. 그는 졸업 후 호주에서 가야금 공연을 열어 300석을 매진시키며, 한국 전통 음악의 매력을 전했다.

외국인들의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음악 수업이 아니라,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여정이다. 악기를 배우며 그들은 한국어 억양, 전통 의상, 지역 축제, 그리고 사람들의 정서까지 체험한다. 때로는 한국인보다 더 진심으로 국악을 사랑하게 되며, 그 소리는 여행의 추억이 아니라 평생 간직할 문화적 유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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